백화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매장은 무엇일까요?
백화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오랫동안 많은 백화점의 1층을 차지해온 대표적인 상품이 화장품과 향수, 명품 잡화입니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화려한 조명 아래 립스틱과 향수가 진열되어 있고 여러 화장품 브랜드의 매장이 나란히 이어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자주 사는 옷이나 신발, 생활용품을 1층에 놓을 수도 있고 식품관을 가장 접근하기 좋은 곳에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랫동안 화장품이 백화점의 가장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1층을 차지해온 걸까요?
단순히 화장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만은 아닙니다. 백화점에서 1층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백화점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장소입니다. 화장품은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도 다양한 상품을 진열할 수 있고 브랜드마다 조명과 진열장을 이용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도 좋습니다. 실제로 국내 백화점 업계에서도 1층은 접근성과 유동인구가 높아 화장품과 명품 등이 자리 잡는 이른바 ‘로열층’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오늘은 ‘백화점 1층에 화장품 매장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늘 당연하게 지나쳤던 백화점 1층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품의 위치 하나에도 백화점의 공간 활용과 판매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화점 1층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백화점의 첫인상을 만드는 곳이다
백화점에서 1층은 다른 층과 조금 다른 역할을 합니다.
처음 방문한 사람도 별도의 안내를 받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고, 지상 출입구를 이용하는 고객이라면 백화점에 들어온 직후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층에 어떤 매장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백화점 전체의 첫인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화장품 매장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특징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화장품은 상품 자체의 크기가 비교적 작습니다. 립스틱과 향수, 파운데이션, 아이섀도처럼 작은 제품을 유리 진열장이나 선반에 가지런히 배치할 수 있습니다.
큰 가구나 가전제품처럼 넓은 전시공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매장의 분위기를 화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브랜드 로고가 크게 보이는 매장, 밝게 빛나는 진열대, 다양한 색상의 화장품, 향수병과 광고 이미지 등이 한 공간에 모입니다. 브랜드마다 사용하는 색과 진열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여러 매장이 모여 있으면 백화점에 들어온 순간부터 시각적으로 풍성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화장품 매장의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매장의 색채와 상품을 보여주는 방식이 소비자의 구매 선호와 관련된 중요한 요소로 다뤄졌습니다.
향수도 비슷합니다.
옷은 직접 입어보거나 사이즈를 찾아야 하지만 향수는 매장을 지나가다가도 시향지를 받아 향을 맡아볼 수 있습니다. 화장품 역시 손등에 색을 발라보거나 제품을 직접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상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즉 화장품 매장은 단순히 상품을 선반에 쌓아두는 공간보다 사람의 눈과 후각, 직접 체험을 이용해 관심을 끌기 좋은 상품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화점 입장에서 1층은 사람들이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계속 지나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옷을 사러 온 사람도 1층을 지나갈 수 있고 식사를 하러 온 사람도 지나갈 수 있습니다. 다른 층에 있는 매장을 방문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1층의 여러 매장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 화장품처럼 작은 상품을 보기 좋게 진열하고 직접 시험해볼 수 있는 매장이 있다면 처음부터 그 상품을 살 계획이 없었던 사람에게도 브랜드를 보여줄 기회가 생깁니다.
또 화장품은 백화점에서 작은 면적을 사용하면서도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상품군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과거 국내 백화점의 층별 배치를 다룬 자료에서도 1층은 접근성이 높고 유동인구가 많으며, 화장품 매장은 상대적으로 작은 매장 면적에서도 높은 매출을 낼 수 있다는 점이 1층 배치의 이유로 설명됐습니다.
결국 백화점 입장에서 1층은 단순히 빈 공간에 매장을 넣는 장소가 아닙니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어떤 상품과 브랜드를 먼저 보여줄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화려한 진열이 가능하고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도 많은 상품과 브랜드를 보여줄 수 있는 화장품이 오랫동안 백화점 1층의 대표적인 상품군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화장품을 사는 고객은 백화점 전체에서도 중요한 고객이 될 수 있다
백화점이 화장품을 좋은 위치에 배치해온 이유를 단순히 화장품 매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한 사람이 립스틱 하나를 얼마에 구입했는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고객이 백화점 전체에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다양한 상품을 구매하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현대백화점의 자체 카드 이용 고객을 분석한 사례를 보면 이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9년 공개된 자료에서는 그해 11월까지 현대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한 번 이상 구입한 고객들이 전체 카드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78.5%로 집계됐습니다. 이것은 화장품 자체가 백화점 전체 매출의 78.5%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화장품을 구매했던 고객들이 해당 백화점에서 다른 상품까지 구매하며 만들어낸 전체 소비 규모가 상당히 컸다는 의미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백화점에서 화장품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옷도 사고 식품관도 이용하고 레스토랑에도 간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이런 고객이 상당히 중요한 고객층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주 찾는 상품을 접근하기 쉬운 곳에 배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화장품의 구매 방식도 다른 상품과 조금 다릅니다.
가구나 대형가전처럼 몇 년에 한 번 구입하는 상품도 있지만 화장품은 사용하면서 소모됩니다.
사용하던 파운데이션이나 향수가 떨어지면 다시 구입할 수 있고, 새로운 색상의 립 제품이나 계절에 맞는 제품을 추가로 구입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제품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특정 브랜드를 다시 찾기도 합니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한 번 방문하고 끝나는 고객보다 꾸준히 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있는 고객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화장품 매장의 특성도 있습니다.
립스틱이나 향수 한 병은 의류나 가구에 비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습니다. 같은 크기의 매장 안에서도 다양한 종류와 색상, 브랜드의 제품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즉 백화점의 귀중한 1층 면적을 사용하면서도 상품을 밀도 있게 구성하기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백화점에서는 화장품과 명품, 잡화처럼 매출 기여도가 높고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좋은 상품을 낮은 층에 배치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됐습니다. 실제 국내 백화점의 과거 층별 매출 자료에서도 명품과 화장품·잡화가 집중된 1층의 매출 비중이 높게 나타난 사례가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백화점에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자주 찾는 상품일수록 무조건 1층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식품관은 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고 의류는 여러 층에 나뉘어 있습니다. 식당가는 오히려 높은 층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백화점은 단순히 인기순으로 상품을 1층부터 차례대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상품의 특성과 고객의 이동방식, 매출, 매장 면적 등을 함께 고려해서 층을 구성합니다.
그 과정에서 화장품은 오랫동안 접근성이 높은 1층을 사용할 가치가 큰 상품군으로 평가되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백화점 1층=화장품’이라는 공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모든 백화점의 1층에는 반드시 화장품 매장이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법으로 정해진 규칙도 아니고 모든 백화점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공식도 아닙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이 오래된 공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리뉴얼 과정에서 화장품 매장을 3층에 배치한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3층이 지하철역과 직접 연결되는 주요 출입구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한 변화였습니다. 즉 건물에서 숫자로 표시된 ‘1층’보다 실제로 고객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 어디인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화점의 구조가 예전보다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과도 연결됩니다.
과거에는 지상 정문으로 들어와 1층부터 쇼핑을 시작하는 모습이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대형 백화점은 지하철역이나 지하상가와 바로 연결되기도 하고 주차장을 통해 들어오는 고객도 많습니다.
복합쇼핑몰과 연결된 백화점이라면 여러 층에 주요 출입구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1층만이 모든 고객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백화점이 판매공간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도 변하고 있습니다.
2026년 국내 백화점 업계에서는 기존처럼 ‘1층 화장품, 지하 식품관’처럼 상품군을 층별로 명확하게 나누던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의 취향과 경험을 중심으로 공간을 다시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지하 식품공간과 가까운 곳에 향수와 화장품 브랜드를 함께 배치하는 등 과거의 전형적인 층별 구성을 깨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플래그십 매장은 전통적으로 1층에 있던 뷰티 매장을 2층으로 옮긴 적이 있습니다. 더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브랜드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변화였습니다.
결국 ‘백화점 1층에는 화장품이 있다’는 것은 절대적인 규칙이라기보다 오랫동안 효과적이라고 여겨졌던 백화점의 대표적인 매장 배치 방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1층은 접근성이 좋고 유동인구가 많습니다. 화장품은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도 다양한 상품을 진열할 수 있고 시각적으로 화려한 공간을 만들기 좋습니다. 화장품을 구입하는 고객 역시 백화점에서 중요한 고객층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런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화장품이 오랫동안 백화점의 ‘얼굴’과 같은 1층을 차지해온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백화점을 이용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보다 식사와 전시, 체험을 함께 즐기는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층별 구성 역시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백화점에 방문한다면 정문을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어떤 매장이 보이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만약 화장품 매장이 가장 먼저 보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빈자리에 화장품 브랜드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백화점의 공간 활용과 판매 전략이 만들어낸 익숙한 풍경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