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호텔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객실 구조가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짧은 현관이나 통로가 나오고, 바로 옆에는 옷장이나 욕실이 있습니다.
그 통로를 지나야 침대가 있는 공간이 나오고 가장 안쪽에는 창문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텔마다 인테리어도 다르고 객실 크기도 다른데 왜 욕실의 위치는 비슷한 경우가 많은 걸까요?
단순히 호텔들이 비슷한 인테리어를 따라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호텔 건물은 일반 주택과 달리 비슷한 크기의 객실을 한 층에 여러 개 반복해서 배치해야 합니다. 동시에 각 객실에 화장실과 세면대, 샤워시설을 만들고 물을 공급하고 사용한 물을 다시 내보낼 배관도 설치해야 합니다.
여기에 복도와 객실 사이의 동선, 창문과 전망, 객실에서 실제로 머무는 공간의 배치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오늘은 ‘호텔 객실에는 왜 현관과 욕실이 비슷한 위치에 몰려 있을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호텔 객실의 구조를 살펴보면 작은 객실 하나에도 생각보다 많은 설계상의 이유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텔 객실은 하나의 방을 수십 번 반복해서 만드는 구조에 가깝다
집을 생각해보면 같은 아파트 안에서도 방마다 역할이 다릅니다.
거실이 있고 안방이 있고 작은방이 있습니다. 주방과
욕실도 각각 필요한 위치에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호텔은 조금 다릅니다.
한 층의 긴 복도를 중심으로 비슷한 크기의 객실이 여러 개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형태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객실 하나가 완성되면 그와 비슷한 객실이 옆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객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려면 무엇보다 객실 하나의 폭과 깊이, 욕실과 침실의 위치를 반복하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호텔에서 복도 쪽에 객실 출입문이 있고 그 안쪽에 욕실과 옷장 등이 배치되며, 그보다 더 안쪽에 침대와 창문이 놓이는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욕실은 침대처럼 원하는 위치에 단순히 옮겨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세면대에는 물이 들어와야 하고 사용한 물은 빠져나가야 합니다. 변기에도 급수와 배수시설이 필요하고 샤워실에는 온수와 냉수, 배수시설이 모두 필요합니다.
벽 안이나 바닥, 천장 등에는 이런 설비를 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호텔을 설계할 때는 욕실 하나만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객실의 욕실과 배관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반복해서 배치할 것인지도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이웃한 객실의 욕실을 가까운 위치에 배치하여 설비가 지나가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긴 복도의 양쪽으로 객실이 반복되는 호텔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각 객실의 욕실이 모두 제각각 다른 위치에 있다면 물을 공급하고 배수하는 설비도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비슷한 위치에 욕실이 반복된다면 객실층 전체의 설비를 보다 규칙적으로 계획하기 쉬워집니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위아래층에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10층의 욕실 위에 11층 욕실이 있고 그 위에 12층 욕실이 배치되는 식입니다. 실제 위치와 설비 구성은 건물마다 다르지만, 여러 층의 객실을 반복해서 만드는 호텔에서는 이러한 수직적인 설비 계획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객실 문을 열 때마다 비슷한 위치에서 욕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닙니다.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의 객실을 효율적으로 반복해서 만들기 위한 호텔 건축의 특징이 객실 안에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망이 좋은 창가에는 욕실보다 침대가 있는 공간을 두기 유리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욕실을 객실 가장 안쪽 창문 옆에 만들면 안 되는 걸까요?
물론 그런 호텔도 있습니다.
특히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에서는 욕조에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욕실을 창가에 배치하거나 침실과 욕실 사이에 유리벽을 설치하는 등 일반적인 객실과 전혀 다른 구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일반적인 호텔 객실에서는 창문 가까이에 침대와 의자, 테이블 등 투숙객이 오래 머무는 공간을 배치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호텔에서 창문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바깥의 햇빛이 들어오고 도시나 바다, 산 등의 전망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호텔 안에서도 전망에 따라 객실 가격이 달라질 정도로 창밖 풍경은 객실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공간을 욕실이나 옷장으로 사용해버리면 침대가 있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창문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객실 입구 가까이에 욕실과 옷장을 배치하면 창가 쪽 공간을 침실과 휴식공간으로 넓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텔 객실에 들어갔을 때
복도→객실 →문 →욕실/옷장 →침대 →창문
처럼 이어지는 구조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욕실과 옷장이 객실 입구에 있으면 복도와 침대 사이에 하나의 공간이 더 생깁니다.
호텔 객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침대가 붙어 있는 것보다 짧은 현관과 욕실, 옷장 등을 지나 침실이 나오는 구조가 공간을 구분하기에도 좋습니다.
호텔 복도에서는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거나 다른 객실의 문을 여닫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나 하우스키핑 카트가 이동하는 소리도 날 수 있습니다.
입구와 침대 사이에 욕실이나 옷장 같은 공간이 놓이면 침실과 복도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생깁니다. 다만 실제 방음 성능은 벽체와 객실문, 틈새, 설비 등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되므로 욕실이 입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객실이 조용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흔히 보는 호텔 객실 구조는 욕실을 어디에 둘 것인지뿐 아니라 투숙객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을 어디에 둘 것인지까지 함께 고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급 호텔에서는 일부러 욕실을 창가에 만들기도 한다
여기까지 보면 호텔 욕실은 무조건 입구에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호텔을 많이 다녀보면 완전히 반대인 객실도 만날 수 있습니다.
객실에 들어갔는데 침실 옆으로 욕실이 길게 이어져 있거나, 욕조 바로 옆에 커다란 창문이 있어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목욕할 수 있는 객실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침실과 욕실 사이의 벽을 유리로 만들어 욕실에서도 객실의 창밖 풍경이 보이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왜 이런 객실은 앞에서 설명한 효율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는 걸까요?
호텔의 모든 객실이 효율성만을 목표로 설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객실에서는 제한된 공간에 침대와 욕실, 옷장 등을 효율적으로 넣는 것이 중요하지만 스위트룸이나 고급 객실에서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목욕할 수 있는 욕조나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욕실은 그 자체가 객실의 특징이 됩니다.
사진으로도 눈에 띄기 때문에 호텔을 선택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건물의 모서리에 있는 코너룸은 일반 객실보다 창문을 배치할 수 있는 면이 많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침실뿐 아니라 욕실에도 창문을 만들 여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호텔에서도 일반 객실은 입구 바로 옆에 욕실이 있는데 스위트룸은 욕실이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호텔 객실의 구조를 보면 호텔이 그 객실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반 객실이라면 욕실과 옷장이 입구 근처에 모여 있고 창가에 침대가 놓이는 전형적인 구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전망과 공간 경험을 강조하는 객실이라면 욕실을 창가에 배치하거나 욕조에서 전망을 볼 수 있도록 색다른 구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많은 호텔에서 비슷한 객실 구조가 반복되는 것은 단순히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따라 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객실을 반복해서 배치해야 하는 호텔의 특성, 급수와 배수를 위한 설비, 객실에서 가장 가치 있는 창가 공간의 활용, 투숙객의 동선 등 여러 조건을 함께 고려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호텔에 방문한다면 객실 문을 열자마자 욕실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객실 구조가 ‘왜 이 욕실은 항상 여기쯤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